[언론보도] 축구에 빠진 '그라운드의 돈키호테'- 스포츠Q(큐)

[SQ포커스] 펀드매니저에서 축구 심리 전문가로 변신, 자신만의 이론 확립…축구산업 영역 확장 계획

[300자 Tip!] 축구 현장에서는 선수, 지도자뿐 아니라 에이전트와 수많은 의료진 등 다양한 사람들이 뜨거운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최근에는 스포츠 심리 전문가도 선수들의 심리 안정과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주기 위해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런데 자신을 '축구심리 분석 전문가'라고 소개하는 한 사람이 있다. 이력이 좀 특별나다. 스포츠 심리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원래 업무 역시 축구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런데 자신의 전공과 축구를 접목시켜 독특한 축구 이론을 만들어냈다. 다소 괴짜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축구를 통해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축구컨설팅 업체 '손박사싸커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손외태(53) 대표, 그를 만났다.

[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최대성 기자] 서울 용산구에 자리잡은 효창운동장 근처에 '손박사싸커아카데미' 간판을 단 조그만 사무실이 있다. 2004년부터 축구선수들의 심리를 상담하고 축구 이론과 실기 교육을 진행하는 손외태 대표의 '헤드쿼터'다.

손외태 대표는 축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직종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출신으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투자상담사로 활약한 금융인이었다. 남부럽잖은 수입을 받으면서 자신의 직종에 계속 충실할 수 있었지만 스포츠에 대해서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다.


대학생이던 1983년 멕시코에서 열렸던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 4강 신화를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던 손 대표는 1990년대 초반 축구경기를 지켜보다가 '왜 축구를 저렇게 하는 것일까. 더 잘 할 수는 없는 건가. 천문학적인 몸값을 받는 선수와 저들의 플레이 차이는 무엇일까'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됐다. 손 대표는 주식시장 분석에 쓰는 이론에 축구를 대입해봤다.

"시장에서 투자가가 심리적인 불안감을 느끼면 투매를 하게 되죠. 이럴 때 주식을 사면 수익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축구에서도 마찬가지로 골키퍼와 수비수가 심리적인 불안감을 크게 느끼는 상황을 만들면 그만큼 골로 이어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게 되죠."

▲ 손외태 대표가 축구계에 투신하게 된 것은 어떻게 하면 좀 더 골 결정력을 높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세계 특급 공격수들의 장점과 특징을 분석하며 공통점을 찾았고 이를 토대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자신만의 이론을 만들어냈다.
◆ 축구계에서 적지 않은 따돌림, 그가 돈키호테로 불리는 이유

손 대표는 호나우두나 지단 등 세계적인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수백 차례 돌려보며 특징과 장점을 꼼꼼하게 살폈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플레이에서 분명 골키퍼, 수비수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에게는 모두 심리적으로 골키퍼와 수비수를 극도로 불안하게 만드는 의도를 갖고 움직인다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골 확률이 높은 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깨달았죠."


또 손 대표는 휴일만 되면 초등학교부터 프로까지 경기를 관전하며 어떤 상황에서 골이 잘 나오는지를 꼬박꼬박 기록했다. 그의 연구와 분석은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졌고 그는 잘 다니던 증권사를 그만두고 손박사싸커아카데미를 설립해 축구 이론가로 변신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축구 현장에서 '이단아'일 뿐이다. 축구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을 하다가 축구계로 들어왔기 때문에 적지 않게 배척을 당한다. 축구지도자 중에서는 그를 '괴짜, 돈키호테'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선수 출신도 아니고 지도자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며 심지어 스포츠 심리학을 연구한 적도 없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손외태 대표가 종종 자신의 심리상담 성과로 2009년 이동국(36·전북 현대)의 극적인 부활을 얘기하지만 정작 선수 본인은 그렇게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 손외태 대표는 골 결정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골로 만들어낼 수 있는 확률 자체를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갤로핑 사커 이론을 도입했고 코리아 드리블 훈련을 만들어냈다. 사진은 제주 공격수 강수일을 지도하고 있는 손외태 대표. [사진=손박사싸카아카데미 제공]
그러나 손 대표의 직접 지도를 받았던 선수들은 독특한 훈련 방법에 고개를 끄덕인다.

강수일(28·제주)은 올 시즌을 앞두고 포항에서 제주로 복귀하면서 손외태 대표가 개발한 '코리아 드리블'이라는 독특한 볼 컨트롤 향상 프로그램을 교육받았다. 그 훈련은 축구공 3개로 8자 모양을 그리면서 드리블하거나 지름 1m의 큰 공 또는 테니스공을 다루는 내용이었다.

강수일은 당시 훈련에 대해 "발끝의 섬세한 감각을 높이는데 좋은 훈련이었다"며 "좀 더 스피드있고 정확도 높은 드리블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 열정 하나만으로 개발한 그만의 축구 이론, 갤로핑 사커

손외태 대표의 코리아 드리블 훈련법은 빠르고 정확한 드리블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불확실성을 낮추기 위한 것이다. 이런 훈련의 근간에는 그가 모은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만든 자신만의 이론 '갤로핑 사커(Galloping Soccer)'가 있다.

가파른 인플레이션을 뜻하는 경제용어인 '갤로핑 인플레이션'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쉽게 말하면 전진 질주형 축구다. 개인기를 통해 수비수를 제치고 슛으로 연결시킨다는 것이 기본이다.


"한국 축구는 드리블을 치다가 조금 막힌다 싶으면 뒤로 돌리곤 하죠. 이런 상황에서는 절대로 많은 득점 기회를 창출해낼 수 없어요. 세계적인 선수들은 공을 받으면 앞으로 움직이지, 횡이나 뒤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 손외태 대표는 한국 축구가 좀더 득점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횡이나 뒤로 가는 패스가 아닌 앞으로 가는 축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주장하는 갤로핑 사커 이론은 크게 네 가지다. ▲ 오직 골을 넣는데에만 모든 자원을 집중한다는 '목적이론' ▲ 심리적으로 상대의 불안을 조성하는 '심리학' ▲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들의 자세로 교정하는 '행동과학' ▲ 효율성을 높이는 '확률론' 등이다. 이를 바탕으로 선수들에게 골 확률을 높일 수 있는 7가지 기준을 마련했단다. 아쉽게도 손 대표는 그 기준에 대해 "우리만의 고유한 비밀이라 선수들에게만 알려줄 뿐 대중적으로 발표할 수는 없다"고 공개를 사양했다.

하지만 전진 질주형 축구라는 말과 간간이 나오는 그의 지론에서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바로 골에 대한 갈망이었다. 손외태 대표도 박지성이 '원맨쇼'를 펼친 2010~2011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울버햄튼전을 예로 들며 득점에 대한 욕심이 발휘되어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당시 박지성이 후반 추가시간 결승골을 넣은 뒤 자신의 유니폼에 새겨진 엠블럼을 치며 환호하고 마이크 매카시 울버햄튼 감독이 벽을 찼던 바로 그 경기였다.

▲ 손외태 대표는 딸인 손이경 씨(왼쪽)와 함께 손박사싸커아카데미를 이끌고 있다. 지금은 아직 정규 직원 하나 없는 조그만 회사지만 축구 와 스포츠산업 발전에 기틀이 되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 앞으로는 축구산업으로 키운다

손박사싸커아카데미는 단순한 컨설팅 업체는 아니다. 손외태 대표는 이 아카데미를 바탕으로 축구 대학, 매니지먼트, 마케팅 등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해 축구 기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종종 강연도 나가고 하지만 제 눈은 조금 더 높은 곳에 있어요. 일단 선수 매니지먼트와 프로선수, 구단 컨설팅에 중점을 두면서 향후 손박사싸커대학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쳐나가려고 해요. 적어도 축구 이론만 제대로 가르쳐도 시장성은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봐요. 1000조원으로 추산되는 세계 축구시장에서 분명 손박사싸커아카데미가 진출할 수 있는 사업 영역은 있을 겁니다."


현재 손박사사커아카데미의 공식 대표는 손 대표의 딸 손이경(23) 씨로 돼 있다. 처음에는 억대 연봉을 받던 아버지가 갑자기 축구에 빠져들어 집에 생활비조차 보태지 않는 현실을 보며 마음이 답답했던 딸이지만 아버지의 축구 이론과 철학을 듣고 이젠 함께 사업을 이끌어가는 동반자가 됐다.

한 번 어떤 일에 빠지고 꽂히면 될 때까지 모든 것을 바치는 아버지의 성격을 잘 알기에 손이경 씨도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자신 역시 축구 이론가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펀드 매니저에서 축구 이론가로 변신해 어쩌면 무모한 것 같은 도전에 나선 손외태 대표의 목표는 명확하다. 한국 축구의 발전, 그리고 스포츠산업 시장의 확대다.

▲ 손외태 대표는 손박사싸커아카데미를 모체로 대학과 매니지먼트, 마케팅 등 다양한 스포츠산업 분야로 확장시킬 꿈을 안고 있다.


[취재후기] 한 누리꾼이 "앞으로 휴대폰은 MP3도 되고 카메라 기능도 있고 내비게이션도 되고 인터넷도 되고 온갖 기능이 다 되는 제품이 될 것"이라고 글을 적었다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그럼 그게 컴퓨터지, 휴대폰이냐"는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놀림거리가 됐던 글은 이제 앞을 내다보는 예언이 됐고 글쓴이는 미래를 내다보고 아이디어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쩌면 손외태 대표도 축구 현장에서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비록 괴짜로 평가받을지 몰라도 한국의 스포츠산업 시장이 새로운 모습이 된다면 그 역시 선구자가 되지 않을까. 어떤 분야에서 선구자가 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고된 일이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묵묵히 가다보면 자신이 원했던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tankpark@sportsq.co.kr

출처 : 스포츠Q(큐) https://www.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163